캐나다로 온 첫해에 김장을 머리털 나고 처음 해보았다.
말이 김장이지 대여섯 포기 담는 게 전부인데 그마저도 쉽지는 않았다.(지금도 과정만 익숙할 뿐 김치를 담는 일 자체는 여전히 내겐 중노동이다.)
오늘 횟수로 10번째 김장을 했다. 즉 캐나다에 온지도 만 10년이 된 것이다.
기운이 넘칠때는 배추를 박스로 주문해서 직접 절여 김치를 담기도 하지만, 이제는 한인슈퍼가 발달한 토론토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리라. 절임배추를 주문했다.
반 박스(15파운드)단위로 주문이 가능한데 나는 3개를 주문해서 총 45파운드, 대략 20kg 정도의 절임배추를 받았다. 이것도 김장인가 싶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하면 김치가 망했을 때 처치곤란이기도 하고 김치냉장고에 따로 보관할 공간도 마땅치 않아서 저 정도가 적당하다.
멸치, 황태채, 양파, 다시마, 사과, 구기자 등 온갖 좋다는건 다 넣고 끓인 육수와, 찹쌀풀 한 냄비를 준비하고
무채와 갓, 파, 다진마늘, 다진 생강 조금, 멸치액젓, 새우젓, 매실액 등을 넣고 김치 속을 만든다.
10년 차 짬바로 계량은 없다. 대충 고춧가루와 육수양으로 되직함을 조절하고 멸치액젓과 새우젓은 맛을 가봐며 양을 조절한다. 살짝 짭짤할 정도의 간이면 된다. 내경험으론 너무 싱거우면 김치가 무르거나 망한다. 짠 건 나중에 무를 더 박아 넣거나 익히면 나아진다.
집집마다 숨겨둔 김치 비법쯤 하나 있을텐데, 우리 집은 주로 청각을 넣는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건조 청각이 정말 유용하다.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의 하나로 김치에 넣으면 깊은 맛을 낸다.
물에 여러번 박박 씻어서 이물질을 제거하고 줄기 끝에 딱딱한 부분을 잘라낸 후 잘게 종종 썰어서 양념에 같이 버무리면 된다. 어설프게 자르면 딱 벌레처럼 보이기 때문에(ㅠㅠ) 최대한 다지듯이 썰어주는 게 좋다.
짜잔.
큰 김치통 하나와 중간사이즈 김치통 2개가 나왔다. 남은 양념으로 총각무도 조금 담았다.
사진으로보면 금방인데 하루종일 몇 번을 채소를 손질하고 썰고 마늘을 다지고 육수를 끓이고 식히고... 휴...
김장을 할 때마다 드는 생각. 그 옛날 우리 엄마들은 어떻게 100포기씩 김장을 하셨을까. 더운물도 잘 나오지 않던 시절에. 절임배추 따위도 없던 시절에.
누구나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있다.
내가 김치를 담아보기 전까진 이게 얼마나 많은 노고와 품이 들어가는 일인지 몰랐던 것처럼. 왜 엄마가 김치를 담고난 대야에 묻은 양념까지 아깝다며 싹싹 밥을 비벼 드셨는지도. 해보면 안다.
해외에 살면 두 배 세배로 더 와닿는다. 한국산 고춧가루 한 톨의 귀중함을.
있을 땐 모른다.
'일상 그리고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다린과 클레멘타인 (1) | 2024.11.21 |
---|---|
캐나다 무상 의료시스템의 실상 (1) | 2024.11.17 |
우리 강아지 쿠퍼 이야기, Australian Shepherd 종에 대하여 (0) | 2024.10.26 |
흑백요리사를 보고 느낀 해외이민자의 감회 (1) | 2024.10.09 |
캐나다 고등학교의 음악교육 (0) | 2024.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