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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그리고 생각

내 생애 열번째 김장을 하며...

by 모때루 2024. 11. 18.

캐나다로 온 첫해에 김장을 머리털 나고 처음 해보았다.

말이 김장이지 대여섯 포기 담는 게 전부인데 그마저도 쉽지는 않았다.(지금도 과정만 익숙할 뿐 김치를 담는 일 자체는 여전히 내겐 중노동이다.)

 

오늘 횟수로 10번째 김장을 했다. 즉 캐나다에 온지도 만 10년이 된 것이다. 

 

기운이 넘칠때는 배추를 박스로 주문해서 직접 절여 김치를 담기도 하지만, 이제는 한인슈퍼가 발달한 토론토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리라. 절임배추를 주문했다.

 

반 박스(15파운드)단위로 주문이 가능한데 나는 3개를 주문해서 총 45파운드, 대략 20kg 정도의 절임배추를 받았다. 이것도 김장인가 싶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하면 김치가 망했을 때 처치곤란이기도 하고 김치냉장고에 따로 보관할 공간도 마땅치 않아서 저 정도가 적당하다. 

 

멸치, 황태채, 양파, 다시마, 사과, 구기자 등 온갖 좋다는건 다 넣고 끓인 육수와, 찹쌀풀 한 냄비를 준비하고

육수 대략 5L와 찹쌀풀 500ml

 

무채와 갓, 파, 다진마늘, 다진 생강 조금, 멸치액젓, 새우젓, 매실액  등을 넣고 김치 속을 만든다. 

 

10년 차 짬바로 계량은 없다. 대충 고춧가루와 육수양으로 되직함을 조절하고 멸치액젓과 새우젓은 맛을 가봐며 양을 조절한다. 살짝 짭짤할 정도의 간이면 된다. 내경험으론 너무 싱거우면 김치가 무르거나 망한다. 짠 건 나중에 무를 더 박아 넣거나 익히면 나아진다. 

무채, 갓, 파, 청각

 

집집마다 숨겨둔 김치 비법쯤 하나 있을텐데, 우리 집은 주로 청각을 넣는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건조 청각이 정말 유용하다.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의 하나로 김치에 넣으면 깊은 맛을 낸다. 

 

물에 여러번 박박 씻어서 이물질을 제거하고 줄기 끝에 딱딱한 부분을 잘라낸 후 잘게 종종 썰어서 양념에 같이 버무리면 된다. 어설프게 자르면 딱 벌레처럼 보이기 때문에(ㅠㅠ) 최대한 다지듯이 썰어주는 게 좋다. 

마른 청각. 냉동실에 보관해두고 조금씩 쓰면 좋다.

 

짜잔.

큰 김치통 하나와 중간사이즈 김치통 2개가 나왔다. 남은 양념으로 총각무도 조금 담았다.

사진으로보면 금방인데 하루종일 몇 번을 채소를 손질하고 썰고 마늘을 다지고 육수를 끓이고 식히고... 휴...

김장을 할 때마다 드는 생각. 그 옛날 우리 엄마들은 어떻게 100포기씩 김장을 하셨을까. 더운물도 잘 나오지 않던 시절에. 절임배추 따위도 없던 시절에. 

몇달은 나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줄 김치들.

 

누구나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있다.

 

내가 김치를 담아보기 전까진 이게 얼마나 많은 노고와 품이 들어가는 일인지 몰랐던 것처럼. 왜 엄마가 김치를 담고난 대야에 묻은 양념까지 아깝다며 싹싹 밥을 비벼 드셨는지도. 해보면 안다.

해외에 살면 두 배 세배로 더 와닿는다. 한국산 고춧가루 한 톨의 귀중함을.

 

있을 땐 모른다.